[2019여름추천도서] 청소년 농부 학교(홍정인)

작성자
홍정인
작성일
2019-07-08 10:30
조회
19

<청소년 농부 학교> 김한수, 김경윤, 정화진 지음, 창비교육


충실성 : 5, 가독성 : 5, 진실성 : 5, 대표성 : 4, 확장성 : 5, 복합성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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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에서 텃밭세트를 분양받을 때만 해도 즐거웠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초록빛 분위기가 촤악 펼쳐진 학교 옥상을 상상하고, 때가 되면 바로 뜯어온 채소들로 싱그러운 밥상을 만들 것을 생각하니 벌써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하루 만에 별별 것들이 다 문제로 드러났다.

밥상 위에 쌀밥 한 그릇과 김치 한 조각이 오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손길과 우주의 기운(!)이 스며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걸 마음으로 깨닫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고작 다섯 개의 텃밭 상자를 받아놓고는 그 어려운 내용을 새삼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텃밭 상자에 흙을 담는 일부터가 난관이었다. 무거운 것을 옮겨야 하는 힘든 일이나 손에 흙 묻히는 것을 꺼리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씨를 심는 일은 정성이 가득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잠깐 신나는 야외학습을 나온 듯 텐션이 한껏 올라있는 아이들이 흩뿌려댄 씨를 바라보는 것은 조금 참담했다. 빠르게 성과를 확인해야 하고 곧바로 재미와 지루함을 판단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농사란, 들이는 힘과 에너지에 비해 몹시 느린 결과를 내주는 아주 지루한 작업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상추와 깻잎이 어느덧 싹을 틔우고,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마트에서 파는 것 같은’ 모습이 되어가자, 아이들은 상추와 깻잎에 ‘상돌이’, ‘깻츠’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매일 지극정성 살피기 시작했다. 케일은 싹을 틔우자마자 나비 애벌레의 끊임없는 공습을 받았는데, 아이들도 지지 않고 나무젓가락으로 애벌레를 하나하나 잡아내는 신공을 발휘했다. 고기가 아니면 먹을 것이 아닌 것처럼 굴던 아이들이 직접 딴 상추와 깻잎에 쌈을 싸며, 옥상텃밭을 더 확장해 진짜 ‘농사’처럼 해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어떤 일의 시작이나 과정은 생략되고 그 결과만을 향유하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안다’는 이야기가 단지 요즘 아이들의 무지에 대한 한탄에 머무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겪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성찰의 범위가 한껏 좁아져 있음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농부 학교’는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운영한 청소년 농부 학교의 한해살이를 바탕으로, 절기에 따른 작업과 수확한 작물로 맛있게 해먹을 수 있는 메뉴 등을 그림과 사진으로 쉽게 안내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청소년들의 생각을 넓혀줄 내용들을 편안하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농사의 경험이 단지 식량 생산의 체험을 넘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두둑을 만들고, 물을 주고, 때에 맞춰 할 일을 챙겨가면서 내 삶의 근원을 발견하는 기회를 얻기 때문일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통해 세상과 연결된 자신을 알게 되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을 통해 세상에 이롭게 쓰이는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것. 그런 시간을 거치며, 그저 주어진 것들을 소비하고 가치 없이 낭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힘써 가꾸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건강한 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나비 애벌레의 공습으로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 케일을 다음번에는 다시 제대로 키워볼 예정이다. 책에 안내된 내용대로 아이들과 함께 천연농약을 만들어, 애벌레를 좀 더 ‘평화적으로’ 퇴치해봐야겠다.

 

홍정인 (서울 꽃피는학교 교사 jeongin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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